괴담 모음집

인터넷 이야기) 기억 저 너머에서

모닥불 앞 나그네 2024. 6. 27. 00:42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않았던 어린 시절, 나는 조금만 걸어 나가면 논밭이 보이는 한적한 외곽 지역에 살고 있었다.

 

어린이가 많이 살지 않는 마을에서는 다른 친구들과 같이 놀려면 한참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기에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사는 형과 나, 서진이는 점심에 만나 해질녘까지 함께 어울려 다니는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였다.

 

 

 그 날도 한여름 무더웠던 다른 날들과 별다를 게 없었던 그런 하루였다.

 

점심을 먹고 공터에서 만난 우리는 한참을 뛰놀다 경사길 중턱까지 걸어 올라갔다.

 

아기 언덕이 여럿 솟아있는 이곳에서는 소나무가 여럿 버티고 서있어 작은 언덕에 걸쳐 누워 그늘 속에서 하늘을 구경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찌는 더위에 아직 저녁까지는 한참 남아있어서 심심한 농담을 따먹으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고의 장소였다.

 

 

 온몸을 흥건하게 적셨던 꿉꿉했던 땀도 다 말라갈 때 쯤 형이 갑자기 폐쓰레기장에 놀러 가자고 말했다.

 

그곳은 도심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한데 모이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항상 베일에 쌓인 궁금증을 자극하는 장소였다.

 

펜스에 둘러쌓여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중장비도 돌아다니는 위험한 곳이었어서 어른들이 함부로 가까이 가지 말라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앞섰지만 뒷일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 머뭇거리고 있자 형이 주머니에서 멋진 장난감을 꺼내 들고 자랑하였다.

 

얼마 전 자신이 개구멍을 통해 쓰레기장에 다녀왔고 거기서 장난감을 찾았다는 것이다.

 

티비에서나 보던 장난감을 직접 눈앞에서 보자 이성의 끈은 이미 끊어져 버렸고 어느덧 서쪽을 향해 우린 걸어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봤자 할머니는 티비를 보지도 못하게 할 거고 엄마가 돌아오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혼자 심심하게 보낼 바에는 같이 갔다 오는게 밑져야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폐쓰레기장은 엄청나게 긴 펜스로 둘러져 있었는데 형이 앞서 발견했던 개구멍을 통해 우리는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텔레비전, 냉장고, 책장부터 시계, 선풍기, 기타까지 다양한 쓰레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휘둥그레진 눈을 겨우 챙겨 서둘러 장난감을 찾기위해 바삐 움직였다.

 

머리 위해 떠있던 해도 어느덧 어깨를 향해가고 있을 무렵 형은 우리에게 급하게 집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아까전에 먹었던 점심이 무더운 날씨에 상해서 배탈이 난 모양이었다.

 

아직 하나도 건지지 못해 조급했던 우리는 조금 더 찾아보고 나중에 집에 간다고 답하고 쓰레기 더미를 들춰내는데 열중했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더 이상 수확은 없을 것 같자 난 서진이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낮에 더위를 먹은 탓인지 어지러움에 빈속이 메스꺼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진이는 포기할 수 없었는지 저 앞에 놓은 냉동고만 찾아보고 집에 가자고 말했다.

 

가정용이라기보다는 식당에서 사용할만한 엄청나게 크고 깊은 냉동고였는데

 

상자꾸러미처럼 생긴 게 안에 들어가면 뭔가 깜짝 놀랄만한 선물이 들어있을 것 같은 마음에 차마 서진이를 말릴 수는 없었다.

 

 

 냉동고 문은 어린이 둘이서 겨우 열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다.

 

안이 너무 어두워서 햇빛이 없으면 둘러보기 어려울 것 같아 내가 문을 잡고 있으면 친구가 들어가 안에 무엇이 있나 살펴보기로 했다.

 

서진이가 어둠속으로 뛰어들어간 뒤 두 손으로 문을 꼭 잡고 간신히 버디고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정신줄을 거의 놓고 있었을 때 뒤에서 갑자기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난 뒤로 고꾸라져 넘어졌다.

 

문이 너무 두꺼웠던 탓인가 친구의 비명을 들리지 않았고 쿵쿵 거리는 소리만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고 두꺼운 철문을 열어보기 위해 문 앞에서 거의 남지 않은 힘만 낭비하고 있었다.

 

상자 안에 갇혀버린 친구도 힘이 빠졌는지 희미하게 들리던 두드리는 소리도 어느덧 꺼져갔다.

 

도저히 답이 안보이자 난 집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른들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었다.

 

성인 남성 여럿이 달라붙으면 충분히 여는 게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숨 막혔던 개구멍을 기고 헐떡이며 풀밭을 넘어갔다.

 

셋이서 함께할 때는 금방이었던 것 같았는데 혼자 걸아가니 천리길 같이 느껴졌다.

 

하루종일 쌓였던 피로가 누적되어 어느새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꺼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걸음 한걸음 발자국을 뗄 때마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갔고 배고픔마저 잊은 채 이불 위에 쓰러지고 싶은 욕구만 남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내 방 안이었고 침대에 누워 몽롱한 기분과 함께 막 깨어난 상태였다.

 

어머니 말로는 퇴근하고 집에 다다랐을 때 문 앞에 기대어 쓰러져있던 나를 발견하였는데

 

아무리 흔들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길래 방 안으로 옮겨 차가운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재웠다는 것이었다.

 

찜찜한 기분과 피곤한 몸을 뒤로 하고 엄마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아무 말 없이 어머니를 꼭 껴안았고 이후 오랜만에 집에 온 아버지와 함께 수박도 먹고 영화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평화로웠던 주말이 지나고 평범한 월요일이 찾아왔다.

 

내 마음의 고요는 길 앞에서 만난 형과 함께 깨지고 말았다.

 

형 입에서 서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지난날 있었던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형에게는 일단 이리저리 둘러댄 후에 난 바로 폐쓰레기 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없었다. 분명 가장 안쪽 눈에 제일 잘 보이는 장소에 놓여있던 냉동고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돌아보았으나 한밤중에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당혹스러움과 죄책감이 동시에 온몸을 파고들어 숨조차 쉬기 힘들어졌다.

 

난 문제를 직면하기보다는 망각을 택했다.

 

서진이 어머니가 수소문 끝에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 난 그날 너무 더워서 형처럼 서진이를 두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고 둘러댔다.

 

이후에도 한동안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진이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줄어듬과 동시에 내 기억도 언덕 저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나는 부모님의 이직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악몽의 실마리마저 이 순간 모두 끊겨버렸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 일에 대해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할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진이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나한테 뭔가 놓고 온 게 있지 않나 물어보았다고...

 

그 말을 듣고 한쪽에 잠가놓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서진이 어머니가 다 알게 되었나?

 

 

아니면 서진이가 살아 돌아온 건가?